편집증과 상황대처능력
모든 경우의 수를 미리 상상하며 살아온 편집증적 대비가 통하지 않았던 사건 — 입사 3주차 동기의 극단적 선택을 막지 못한 날들에 대한 기록.
나와 입사 동기이자 수습 프로젝트를 단둘이, 함께 진행하던 동갑친구가 투신자살을 했다. 입사한지 단 3주만에..
. .
나는 내 영향범위에 없는 것들에는 관심이 없다. 그래서 한국뉴스를 안본다. 관심을 가지면 답답함만 느끼고 결국 내가 생각하는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건 단하나도 없다는걸 깨닫는다.
대신 내 영향 범위, 범주 안에 있는 것에 대해서는 나의 이상을 펼치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나의 행동이 언제나 올바르진 않을 수 있다. 오로지 현재의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들을, 그것이 이상의 선택이라고 믿고 행할 뿐이다. 그러기에 어떠한 삶을 살아도 나는 과거를 후회하지 않을 수 있다. 그리고 나는 결과론적으로 나름 잘 살아왔고, 결과기반 통계적으로 앞으로도 잘 살 것이다.
내 주변에는 크게 내 예상을 벗어나는 일들이 잘 발생하지 않는다. 나는 편집증적으로 주변의 상황에 대해서 일어날 수 있는 모든 경우의 수를 생각한다. 인간관계에 있어서 가장 싫어하는 것은 오해하기이고, 가끔은 최악의 상황을 대비하며 내가 영웅이 되는 상상을 하기도 한다. 일례로 누군가가 내 앞에서 미끄러지면 잡아주기도 하고, 선릉역 지하철 내려가는 계단에서 술취한 아저씨가 앞에서 굴러떨어져 턱이 찢어진 상태로 기절했을 때도 바로 달려가 증상 확인 후 경찰에 신고하고 셔츠 카라, 소매 단추 벗기고 응급처치를 했던 적이 있다.
이런 내가 나와 매일 많은 시간을 함께 보냈던, 어쩌면 3주동안 가장 가깝게 지냈던 입사동기가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것을 막지 못했다. 이 사람의 심리상태를 가장 잘 이해하고 있었던 사람이 나 일지도 모른다. 어떻게 내 영향 범주 안에 있었던 사람한테 이런일이 일어날 수 있지?
너무 급격했다. 이렇게 빨리 일이 벌어질 줄은 몰랐다.. 0.1%의 가능성은 존재했고 상상도 해봤지만 설마했다. 손 쓸 수가 없었다.
금요일 — 좌절
독특한 친구긴 했지만 그래도 항상 밝고 서로 힘을 내자고 다 할 수 있다고 용기를 나눌 수 있는 친구였다. 금요일에 한번의 큰 좌절을 겪으며 자신감을 잃었지만 나는 용기를 복돋아 주었고 걱정하지말라고 무조건 다 해낼거고 나랑 같이하면 나는 절대 실패안한다고. 도와줄테니까 너무 좌절하지말라고.. 말했고. 그 친구도 고맙다고 같이 잘 해보자고 했다.
.
그걸로 부족했을까? 더 용기를 복돋아주고 위로를 해줘야했을까? 본인만의 상상의 나라에 대해 더 들어주고 이해해주고 힘을 실어줘야 했을까? 나는 최선을 다 한거같은데..
.
내가 나가 아니였다면, 내가 아닌 다른 성격의 사람과 프로젝트를 했었다면? 나도 같은 망상가였다면, 나도 같이 좌절해서 자신감을 잃어서 동질감을 느끼게 할 수 있었다면? 결과는 달랐을까?
월요일 — 위협
월요일. 마지막날 저녁 그는 정상적인 상태가 아니였다. 어쩌면 신호를 보냈던 것일까? 정신분열증세가 보였다. 자신이 도청당하고 있다고 생각했고 동물원 속 갇혀있는 포유류처럼 주변을 맴돌았다. 무논리증세가 보였고, 내가 질문을 하거나 스스로 말문이 막히면 갑자기 일어나 잠시 다른곳을 서성이다 돌아와 앉았다. 멀쩡한 자기 스마트폰을 부숴졌다고 하였고, 자회사로 가서 돈을 많이 벌거고 나와 함께 3개월동안 잇속을 챙기자고도 했다.
이사람의 현재 상태는 어떤일이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을거같다고 느꼈다. 가장먼저 들었던 생각은 내가 위험할 수도 있겠다였다. 그 다음으로 나뿐만 아니라 그 스스로를 포함해서 누군가에게 인명피해가 갈 수도 있겠다. 더 나아가 회사에 피해가 가해질 수도 있겠다고 생각이 들었다. 사실 가장 예의주시하고 있었던 것은 내가 다칠 수도 있겠다는 부분이였다.
그가 갔다. 11시 10분 쯤. 법카로 택시타는 법을 알려주려했으나 알아서 가겠다는 말을 남기고 퇴근을 하였다. 그때 남아있던 팀원들과 모여 이 상황에 대해 공유했다. 다들 공감하고 있었고, 나는 지금 이 상황은 생각보다 심각하게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결론은 내일 오전에 당장 팀장님, 부문장님께 보고하기로 했다.
집에 도착하고 침대 위에서 안식을 취하며 직장에 이런 일이 일어나면 어떤 조취를 취해야 하는지 검색해봤다. 인사적 조취 보다는 전문의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도와줘야한다고 한다. 마음이 약한 사람이 큰 사건, 큰 좌절을 겪게 되면 급진성 조현병이 나타날 수 있다고 한다.
.
내가 위험할 수 있다는 생각은 사그라졌다. 그가 걱정되기 시작했다. 결혼한지 3개월 밖에 안됐는데, 이 친구의 실패하는 모습이 보여지면 안되는데, 수습통과 못하면 당장 어떻게 해야하지? 팀장님께 보고하면 팀장님은 당장 어떻게 대처 해야할지 알고계실까? 팀원들에게 얘기했다. 우선 내일 출근하고 이 친구의 상태를 보고 신중하게 준비해서 이사람한테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회사에 알리자고.
그리고 다음날 아침 출근하자마자 그의 자리를 찾았다. 그는 없었다. 오늘 좀 늦나보다 기다려보았다. 그는 떠나있었다.
자살은 정말 무책임한 행동이다. 전날 다퉜다던 그의 와이프는 얼마나 죄책감에 시달리면서 살아야 할까. 왜 그랬을까? 하루만이라도 더 살았더라면 달라졌을까? 내가 어떤 조치를 취할 수 있었을까?